1.
수강생들에게 “주어진 글을 읽고 그 안에 있는 논증을 재구성하시오.”라는 문제를 내면 답이 다양합니다. 채점할 때 제가 만들어놓은 모범답안과 다르다고, 무조건 낮은 점수 주지 않습니다. 동일한 핵심이 여러 수준으로 기술(記述)될 수 있기 때문에, 핵심을 반영하고 있으면 크게 감점하지 않는 것이지요. 이렇게도 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할 수 있다는 제 표현이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원리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 원리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이 방식도 가능하고 저 방식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입체적으로 접근하는 저의 글이, 그동안 간단히 여겼던 주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 같지만 진지하게 읽어보시면 핵심 원리가 보이고 이 주제에 관련된 복잡한 현상이 쉽게 정리되는 경험을 하실 것입니다.
2.
여러 개의 안건들이 결의되지 않고, 관련 부서(위원회)로 넘어가(이첩) 심사된 후 “그 부서의 보고”로 처리되는 방식도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1) 앞글에서 언급했듯이 “부서의 보고”를 <원래 보고대로> 또는 <일부 수정해서> 본회의가 받아주는(승인 또는 추인) 방식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보고서를 승인한 것이지만, 이 승인 속에는 그 안의 개별 안건의 결의가 들어 있습니다.
(2) 처음부터 “부서의 보고”를 형식만 ‘보고 사항’이고 내용은 ‘결의 사항’으로 보는 것입니다. 부서의 보고를 하나의 “의안”으로 여기는 것이지요. 각 안건을 심사평가한 후 그 결과를 한 조목 한 조목 정리한 후 그것을 묶어서 한 의안(형식은 보고안)으로 상정한 셈입니다.
예를 들어 정치부로 이첩된 안건들을 심사하고 나서 행해지는 “정치부 보고”를 <일반 회의규칙> 제2장 제13조 “(안건심의) 제안된 안건은 3독회(讀會)로 심의한다”에 맞추어 그 처리 과정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1. 제1독회: 제안자의 설명을 듣고 질문과 대체 토론이 있은 후 제2독회로 넘기느냐 넘기지 않느냐를 결정한다.
보고 때 제1독회는 보통 생략합니다. 정치부가 특별히 낸 헌의안도 아니고 이첩된 것을 심사한 것이니 제안설명, 질문, 토론이 필요가 없지요.
2. 제2독회: 축조 심의한다. 이때에 수정안이 나오면 원조항과 대조하여 심의하고 다수결로 가부를 결정한다.
안건이 많기 때문에 이 안건에 대한 심의를 담은 정치부 의안(보고안) ‘조목’도 많을 수밖에 없고, 각 조항의 성격이 다른 경우도 많기 때문에 본회의에서 조목 하나씩 읽고 심사하는 것이 제2독회입니다. 정치부 심사 내용에 대해 이의가 없다고 생각하면 “허락이요”하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이때 허락을 “가결”로 보시면 안 됩니다. “일단 이 조목은 큰 문제가 없어 보이니 넘기자”는 의미입니다.
축조 심의를 하다가, 이의가 있으면 해당 조목에 대한 “정치부 의안”을 수정하는 “개의”를 동의할 수 있습니다. 재청으로 개의가 성립되면 앞에서 설명한 방식으로 가부 표결을 하고 가결되면 원래 정치부 의안의 그 조목의 문구는 수정이 됩니다. 가결을 “다수결”로 하라고 했는데요. “과반수” 또는 “종다수”로 처리하면 됩니다.
3. 제3독회: 제2독회에서 수정한 것을 가지고 그 제안 전체를 통과시키느냐 않느냐를 결정한다. 제2독회에서는 수정할 수 있어도 제3독회에서는 못하고 다만 잘못된 글자나 서로 모순되고 저촉되는 것을 고칠 수 있다. 제3독회에서 가부 결정은 정한 규정에 의한다. 회칙안이나 예산안 중에도 간단한 것은 독회의 절차를 밟지 않고 일반 의안처럼 결정할 수 있다.
- 이제 정치부 의안(보고안)이 수정이 되었든 안 되었든 이 안을 통째로 처리해야 하는 단계입니다. 가결이 되면 회의록에 “정치부 보고를 원안대로(혹은 수정해서) 받다”로 기록됩니다.
오래전부터 ‘성가대’를 ‘찬양대’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만, 저는 계속 ‘성가대’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성가대를 사용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관행으로 지적되는 교계의 관행(‘원안대로 받기로 동의합니다!’)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해서 이 연결고리로 원리적으로 가능한 설명을 시도해 보았는데요. 그러나 법원에서는 어떤 안건이 이 ‘그림’ 속에서 처리되었다고 하면 절차적 정당성을 문제 삼을 것 같습니다. 다른 방향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글에 선을 긋으면 산뜻하지 않지만 일단 그어놓고 별도의 글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3.
회의법 용어 중 주의해서 써야 할 용어는 ‘허락’입니다. 축조 심의에서 허락이라는 용어는 “일단 이 조목은 큰 문제가 없어 보이니 넘기자”는 의미입니다.
축조 심의에서 사용하는 '허락'은 사실상 다른 단어에 가깝다는 것 기억하십시오.
옛날에 교회법 전문가로 인정받았던 박병진 목사님은 ‘허락’의 용법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1) 축조 심의 때: “우선 넘겨 놓으라”
(2) 어떤 부서(사람, 단체)에서 광고 요청을 할 때: 회의록에 기재되지 않는 ‘보고’여서 가부표결하지 않고 ‘허락이요’
(3) 회장이 언권을 얻는 경우, 내빈에게 언권을 주는 경우: 원칙적으로는 가부 표결해야 하나 ‘허락이요’ 약식 처리
(4) 개회 이전의 결정: 개회 이전이므로 표결 사항이 아니니 ‘허락이요’로 처리. 예를 들어 “회원 호명을 생략합시다” “허락이요”
(5) 회의 도중 상비부 회의 때문에 회의장을 나가야겠다고 요청할 경우
(6) 표결을 해야하지만 경미한 안건을 ‘허락이요’: 오남용되는 일이 많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 교단 “일반 회의규칙” 제5장 제37조 1항 구두표결에 “이의가 없는 안건을 허락으로 처리할 수 있다”의 ‘허락’이 이 용법에 해당됩니다.
중요한 것, 빼먹었네요. '- 청원은 허락하다'의 '허락'은 "허가하다, 승낙하다"이며 "청원에 상응하는 조치"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헌의에 상응하는 조치"는 "가결(또는) 부결"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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