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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4일 (금) 일점일획_ "바나바"에 대한 묵상(우진성)(IBP)
2025-11-13 21:32:39
묵상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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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바"에 대한 묵상(우진성)

 

바나바는 참 좋은 사람이었다. 

바나바의 이름은 헬라어로 Βαρναβας(바르나바스)이다. 이 이름은 아람어 bar nĕbûʾâ(바 네부아)의 음역으로 보이는데, 이 아람어 이름의 뜻은 "위로의 아들" 혹은 "용기를 주는 아들"이다. 사도행전이 바나바를 “위로의 아들”이라 소개하는 것은 아람어 뜻을 따른 것이다. 이때 "아들"은 "사람"을 뜻하기도 하니, 바나바는 "위로하는 사람, 격려하는 사람, 용기를 주는 사람"이라는 좋은 뜻을 지닌다. 

그는 이름처럼 좋은 사람이었다. 바나바는 사도행전 4장에 등장하여 15장에서 사라지는데, 바나바의 등장과 사라짐을 사도행전 중심으로 묵상하고자 한다. 

바나바가 처음 언급된 장면은, 성령 충만을 받은 성도들이 유무상통하는 공동체로 세워지는 장면이다. 사도행전 4장 32절은 "많은 신도가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고 증언하는데, 이런 공동 소비의 본을 보인 시도가 바나바였다. 사도행전은 이렇게 증언한다. 

키프로스 태생으로, 레위 사람이요, 사도들에게서 바나바 곧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별명을 받은 요셉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밭을 팔아서, 그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행 4:36~37) 

이 구절에서 우리는 바나바는 이름이 아니라 별명이요, 본명은 요셉이었다는 점, 그가 키프로스 태생이며 레위 자손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구절의 요점은 그가 자신의 소유를 신도들의 공동생활을 위해 내놓는데 본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바나바를 사도행전은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바나바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주님께로 나아왔다.(행 11:24)

 

바나바는 바울을 도왔다  

바나바는 바울 보다 인생과 신앙의 선배인데, 바울이 교회의 사도가 되는 과정의 두 국면에서 바울을 세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첫 도움은 사울이 다메섹 사건으로 회심한 후 아직 그를 믿어주는 그리스도인이 없어 겉돌 때, 바나바가 사울을 보증하여 예루살렘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 자리잡게 한 일이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이르러서, 거기에 있는 제자들과 어울리려고 하였으나, 그들은 사울이 제자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서, 모두들 그를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바나바는 사울을 맞아들여, 사도들에게로 데려가서, 사울이 길에서 주님을 본 일과,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사울이 다마스쿠스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한 일을,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행 9:26~27)

다음은 안디옥 교회가 세워져 갈 때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파송하였는데, 바나바가 먼저 한 일은 다소에 가서 바울을 안디옥으로 데리고 온 일이다. 그리고 바울과 함께 일 년 동안 안디옥에서 목회하였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 소식을 듣고서,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냈다. 바나바가 가서, 하나님의 은혜가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였고, 모든 사람에게 굳센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라고 권하였다. 

바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다소로 가서, 그를 만나 안디옥으로 데려왔다. 두 사람은 일 년 동안 줄곧 거기에 머물면서, 교회에서 모임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제자들은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었다.(행 11:22-23, 25~26)

바울을 안디옥 교회의 공동 목회자로 세운 이는 바나바였다. 

 

어느 시점에서 바나바와 바울 관계는 전도되었다. 두 사도의 이름 표기 순서의 함의는?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바울을 안디옥 교회의 대표로 인정하였다. 유대 땅에 기근이 들어 유대의 신도들에게 구제금을 보낼 때(cf.갈 2:10, 롬 15:25–28, 고전 16:1–4, 고후 8~9 장),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바울을 대표로 예루살렘에 보낸다. 

기근이 글라우디오 황제 때에 들었다. 그래서 제자들은 각각 자기 형편에 따라 몫을 정하여, 유대에 사는 신도들에게 구제금을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그들은 그대로 실행해서, 바나바와 사울 편에 그것을 장로들에게 보냈다.(행 11:28~30)

이때까지 사도행전은 "바나바와 바울"의 순서로 둘을 언급한다. 바나바가 여러모로 바울보다 앞선 사람이기에 그런 순서를 택했을 것이다. 이 순서가 뒤집어 진것은 13장에서 키프로스섬 바보에서 바울이 놀라운 기적을 행한 다음이다. 마술사 바예수를 꺽고 그곳 총독을 전도한 일(행 13:4~12)로 바나바와 바울의 관계에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로 사도행전은 바나바, 바울, 요한 마가 일행을 "바울의 일행"(οἱ περὶ Παῦλον 호이페리파울론)이라 지칭하기도 하고, 이름의 표기 순서를 "바나바 바울"에서 "바울 바나바"로 바꾼다. 

바울과 그 일행은 바보에서 배를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로 건너갔다. 그런데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행 13:13)

회중이 흩어진 뒤에도, 유대 사람들과 경건한 개종자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많이 따랐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에게 말을 걸면서, 늘 하나님의 은혜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담대하게 말하였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에게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갔다.(행 13:43, 46, 51)

"바나바 바울"에서 "바울 바나바"로 바뀐 것은, 바울이 드디어 바나바 보다 앞서는 영적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사도행전은 이름의 순서를 적는데 세심하다는 점은 이를 반증한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15장에서 예루살렘회의를 전할 때,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장면까지는 "바울 바나바" 순서로 전하다가, 

몇몇 사람이 유대에서 내려와서, 이렇게 신도들을 가르쳤다. "여러분이 모세의 관례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 두 사람과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충돌과 논쟁이 벌어졌다. 드디어 안디옥 교회는 이 문제로 바울과 바나바와 신도들 가운데 몇 사람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해서, 사도들과 장로들을 찾아 보게 하였다.(행 15:1~2)

그러다가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장면을 묘사할 때는 "바나바 바울"로 바꾸어 전한다.

그러자 온 회중은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들은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통하여 이방 사람들 가운데 행하신 온갖 표징과 놀라운 일을 보고하는 것을 들었다. 바나바와 바울이 말을 마친 뒤에, 야고보가 대답하였다. "4)형제 여러분, 내 말을 들어보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몇 사람을 뽑아서,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여러분에게 보내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하였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입니다.(행 15:12~13, 25~26)

이렇게 예루살렘에 머무는 동안 이름의 표기 순서가 "바나바 바울"로 바뀐 것은 예루살렘에서는 여전히 바울 보다는 바나바가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루살렘은 바나바의 활동무대였고, 그는 예루살렘 교회 출신이었다.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재산 전부를 바친 교인이었다. 

사도행전의 이름 표기가 의도적이라는 것은, 예루살렘에 있던 바나바와 바울이 안디옥으로 돌아온 다음, 다시 이름 표시가 "바울 바나바" 순서가 된 것을 보면 분명해진다. 

그들은 거기서 얼마 동안 지낸 뒤에, 신도들에게서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받고서, 자기들을 보낸 사람들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 머물러 있으면서, 다른 여러 사람과 함께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였다.(행 15:33~35)

이렇게 사도행전의 "바나바-바울/바울-바나바" 이름 표시 순서가 일관되지 않다. 두 사도 사이의 관계가 활동 내용과 지역에 따라 뒤집어지고 바뀌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둘 관계의 불안정성을 감지 할 수 있다. 

 

바나바는 바울과 헤어졌고, 사도행전 무대에서 사라졌다. 이유는? 

바울 바나바 관계에 대한 불길한 마음은 사도행전 15장 하반부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바나바와 바울이 심하게 다투고 헤어진 것이다.

며칠 뒤에, 바울이 바나바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전파한 여러 도시로 신도들을 다시 찾아가서, 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살펴 봅시다." 그런데 바나바는 마가라는 요한도 데리고 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버리고 함께 일하러 가지 않은 그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심하게 다툰 끝에, 서로 갈라서고 말았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떠나갔다. 그러나 바울은 실라를 택하고, 신도들로부터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바라는 인사를 받고서, 길을 떠났다. 그래서 시리아와 길리기아를 돌아다니며, 모든 교회를 튼튼하게 하였다.(행 15:36~41)

사도행전은 이 결별의 이유를 요한 마가에 대한 입장 차이로 전한다. 마가라는 요한은 바나바의 사촌 동생(골 4:10)으로, 베드로가 옥에서 풀려 났을 때 찾아갔던 마리아라는 여인의 아들이다. 요한 마가는 베드로와의 만남을 통해 후에 베드로의 신실한 제자가 되었다.(벧전 5:13) 이렇게 그는 바나바를 포함한 예루살렘 교회 출신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던 인물인데, 바울 바나바와 함께 선교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런데 요한 마가는 선교 여행 중도에 밤빌리아 버가에서 무단 이탈하여 바울 바나바와 헤어진 이력이 있다. 

바울과 그 일행은 바보에서 배를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로 건너갔다. 그런데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행 13:13)

사도행전은 요한의 이탈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지 않지만, 요한이 자신의 존경하는 사촌 바나바와 신진 선교사 바울 사이에 놓인 불명확한 영적 권위 문제가 야기한 갈등 속에 놓이게 되었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어쨌든 두 번째 선교 여행을 떠나며, 바나바는 요한 마가를 다시 데려 가기를 원했고, 바울은 그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이슈는 갈등이 터지는 도화선 역할을 하였을 뿐이었고, 이미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는 묘한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고 추정한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장면은 사도행전 밖에서 전해지는 안디옥 사건이다. 갈라디아서가 전하는 안디옥 사건은 부연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이미 일점일획에서 다룬 적이 있다. 여기 클릭

그런데 게바가 안디옥에 왔을 때에 잘못한 일이 있어서, 나는 얼굴을 마주 보고 그를 나무랐습니다.그것은 게바가, 야고보에게서 몇몇 사람이 오기 전에는 이방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가, 그들이 오니, 할례 받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그 자리를 떠나 물러난 일입니다. 나머지 유대 사람들도 그와 함께 위선을 하였고, 마침내는 바나바까지도 그들의 위선에 끌려갔습니다.(갈 2:11~13)

마지막 문장이 중요하다.(13절) 한글 번역 "마침내 바나바까지도"는 바나바가 위선을 행하는 일에 주저하다가 마지막에 할 수 없이 합류한 듯한 뉘앙스를 가진다. 그러나 원문 ὥστε καὶ Βαρναβᾶς(호스테 카이 바르나바스)에는 그런 뉘앙스가 없다. 직역하면 "바나바도 똑같이" 정도가 된다. 

바나바는 이방인 선교사로 활동하는데, 복음 안에서 누리는 이방인들의 권리를 부인하였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자신의 사회적 자산이 되는 예루살렘 교회 사람들과의 관계가 손상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복음에 대한 진정성이 없다고 바울은 판단했을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가 결별한 것은 앞에서 설명한 복잡미묘한 둘의 관계, 그리고 복음의 진정성에 대한 바울의 의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지, 요한 마가의 동행 문제만으로 한정지어 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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